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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팅앱 속 이상한 남자에서 남편으로

캐나다 키치너, 희연


캐나다에 처음 올 때 문란하게 살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있었다. 한국에선 한 번도 제대로 연애를 해본 적이 없던 나는, 캐나다에 가면 꼭 여자친구를 사귀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에서 도통 팔리지 않으니, 이참에 해외로 판로를 넓히자는 심정이었다.


캐나다에 도착한 건 8월 20일이었다. 그리고 9월 2일, 도착한 지 보름도 채 안 된 시점에 데이팅 앱을 통해 한 사람을 만나게 됐다. 프로필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래에서 찍힌 얼굴은 어딘가 어색했고, 멀리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도 우스꽝스러웠다. 다행히 고양이 사진과 롱보드 사진이 있었는데,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고 한국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탔던 터라 공통의 화제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아 만나보기로 했다. 막상 직접 만나보니 사진보다 훨씬 괜찮았다.


마침 캐나다의 노동절이었다. 도심 도로가 전부 막히고 사람들은 자전거, 보드, 스케이트를 타며 길을 가득 메웠다. 그는 내게 토론토를 보여주겠다며 보드를 타자고 했다. 나는 당연히 점심부터 먹을 줄 알았는데, 커피 한 잔만 마시더니 곧장 보드를 타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그는 신나게 나를 이끌었다. 그는 다리가 길어 속도도 빨랐다. 나는 데이트라기보다는 운동을 함께하는 기분으로 하루 종일 도시를 누볐다. 오후에는 페리를 타고 토론토 아일랜드로 갔다. 배를 타고 20분쯤 가면서 그제야 처음으로 우리는 길게 대화를 나눴다. 그는 사실 프로필에 쓴 이름이 자신의 가명임을 고백하더니, 놀랄 만큼 솔직하게 자신의 가족사를 털어놓았다. 부모님이 이혼했고, 각각 재혼해 이복형제들이 다섯이나 된 이야기, 더 나아가 그의 엄마가 입양아였고, 그 역시 방임과 정서적 학대를 경험했다는 이야기까지.


무척 당황스러웠다. 첫 만남에 이런 이야기까지 꺼내는 게 보통일까? 이게 캐나다 문화인가, 아니면 그가 원래 그런 사람일까? 혹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감당할 수 있으면 남고, 아니면 떠나라’는 무언의 신호를 주는 걸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럼에도 대화는 이상하리만큼 잘 통했다. 그는 내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었고, 나 역시 그의 이야기를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우리는 토론토 아일랜드를 산책하고 다시 페리를 타고 돌아왔다. 어느덧 저녁 8시. 12시에 만나 무려 8시간을 함께 있었는데, 그동안 커피 한 잔 말고는 먹은 것이 없었다. 내가 “배 안 고파?” 하고 묻자, 그는 누가 챙겨주지 않으면 먹는 걸 자꾸 까먹는다고 했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제야 그는 나를 좋아하는 라멘집으로 데려갔다. 저녁을 먹고는 깔끔하게 가벼운 허그를 하고 헤어졌다. 사실 나는 처음 캐나다에 올 때 결심했던 대로, 마음이 맞으면 그날 밤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아무 일도 없이 나를 집에 돌려보냈다.


집에 돌아온 그날 밤, 그는 틴더에서 프로필을 지워버렸다. 연락은 우리 둘이 주고받던 메신저로 이어졌다. 처음 만났을 뿐인데, 그는 내게 아주 긴 메시지를 보냈다. 한 문장 한 문장 정성껏, 그의 마음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나는 조금 부담스럽기도, 조금 설레기도 했다. 아마 이것이, 내가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조금은 서툴지만 진지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린 썸을 타기 시작했는데, 그에겐 ‘고스팅’이라는 아주 나쁜 버릇이 있었다. 어느 날, 토론토에서 열리는 어떤 이벤트를 같이 보러 가기로 했는데, 전날까지도 연락을 잘하다가, 당일 아침부터 갑자기 연락이 안 되는 것이었다. 오후 6시쯤 만나기로 했는데, 오전에 ‘몇 시에 어디서 만날까? 네가 역 근처로 오는 거지?’ 하고 보낸 메시지에 답장조차 없었다. 읽지도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페이스북 프로필도 사라져 있었다. ‘이거 뭐지? 나를 고스팅 한 건가? 나를 차버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은 성격이기에, 무작정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랬더니 딱 침대에서 자다 일어난 얼굴로 나온 것이다. 그때 또 한 번 ‘얘를 계속 만나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도 자기가 너무 미안하다고, 그래도 약속했으니 가기로 한 데 가자 해서 결국 같이 놀러 갔고, 그 뒤로도 다시 연락을 잘 주고받았다.


하지만 다시 한번, 나를 고스팅 하였고, 그때는 정말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연락을 끊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학교 다니던 한국인 여자친구와 연애를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동거를 하게 됐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갇혀 지내다 보니 답답해서 예전에 연락 끊겼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고, 그때 다시 그와 연락이 닿았다.


그렇게 연락을 주고받다가 나는 결국 여자친구를 두고 그와 바람을 피웠고, 나중에 그게 들통나면서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리고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자연스럽게 이 친구와 다시 만나 사귀게 됐다. 그게 처음 만난 날로부터 딱 1년 지난가을이었다. 그의 고스팅 하는 버릇을 극복해 내기 위해 하루 종일 붙어 지내곤 했다. 그렇게 이상한 이 남자와 3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해 현재는 남편으로 함께 살고 있다. 어쨌든 결혼에 성공했으니 망한 데이트는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희연의 데이트 팁

여자들한테는 일단 안전성을 검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처음 만난 사람의 진실성이나 참된 마음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해를 끼칠 사람이 아닌지를 가장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게, 좀 슬프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걸 파악하기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조금 안타깝지만, 어쨌든 사람 목숨은 하나이다.


나의 경우 관계를 만들어갈 때 밀당 같은 걸 잘 못해서 좋으면 좋은 표현을 다 하고, 싫으면 거의 다 드러내는 편이다. 그래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게 오히려 조금 더 쉽다. 한국은 ‘No means No’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곳인 것 같다. 나름 꾸준히 내 표현과 의사결정을 꽤 단호하게 말해온 편이라고 생각하는데도, 이전 데이트에서는 내가 ‘아니라고’ 했을 때 그걸 제대로 받아들인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내가 ‘Yes’라고 할 때는 ‘Yes’로, ‘No’라고 할 때는 ‘No’로 받아들이는 사람인지 보는 게 결국 나를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러려면 내 의사를 단호하고 확신 있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굳이 떠보듯이 애매하게 할 필요 없이, 내가 똑바로 표현해야 상대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고 내 의사를 얼마나 존중해 주는 사람인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스와이프의 대참사

미국, 금성


낯선 땅에 자리 잡는 일은 쉽지 않다. 친구도, 연인도 없이 홀로 지내는 경우 더더욱. 결국 심심함과 외로움에 못 이겨 데이팅앱을 설치했다. 그 후 몇 시간도 안 돼 한 백인 남성과 매칭되었다. 데이팅앱답게 사진 속 그의 외모가 마음에 들었고, 이 지역에 온 지 얼마 안 된 데다 저녁에 별다른 일정도 없던 터라 별생각 없이 바로 만나기로 했다. 미국에서 데이트를 해보는 것도, 앱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자체가 첫 번째 레드 플래그였을지도 모른다.


첫 만남에서 그는 사진과는 달리 조금 산만해 보였다. 허둥대고 주변이 잘 정리되지 않은 사람 같았다. 사진만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게다가 그는 처음부터 너무 성급했다. 엄청 비싼 레스토랑에 데려가, 아직 서로 이름 외에 아는 게 거의 없는데도 마치 앞으로 결혼이라도 할 사람처럼 굴었다. 이유는 기가 막혔다. “내 여동생이 한국인 교포랑 결혼했거든. 나도 왠지 한국인이랑 결혼할 운명인 것 같아.”라고 말하며 앞으로 어디서 데이트를 할지, 1년 동안 어떤 관계를 만들어갈지 혼자 김칫국을 들이켰다.


게다가 그는 첫 만남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와 굴곡진 삶을 한참 이야기했다. 나는 그 모든 게 버겁고 부담스러웠다. 아직 데이팅앱을 설치한 지 24시간도 채 안 된 상태였는데, 이미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고민이 됐다. ‘미국 데이트 문화가 이런 건가?, 다들 첫 만남부터 이렇게 깊이 파고드는 건가?’ 낯선 땅에서 처음 시도하는 연애라 판단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도 그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은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결국 조심스럽게 거절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날 이후 나는 곧장 데이팅앱을 지웠다. 설치한 지 24시간도 안 돼 삭제된 앱. 역시 데이팅앱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외로움을 껴안고 살아가야 하나 싶었다. 물론 그 후 두세 달쯤 지나자 그때의 당혹감도 어느새 희미해졌다. 심심함이 다시 고개를 들 무렵, 이번에는 좀 더 철저히 공부했다. 미국의 데이트 문화에 대해 검색하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법도 연습했다. 그리고 다시 앱을 깔았다. 놀랍게도 지금 3년 넘게 만나는 남자친구도 그렇게 만나게 됐다. 결국 다른 방법으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는 현실도 크게 작용했다.


금성의 데이트 팁

해외에서 연애를 하려면, 특히 데이팅앱으로 사람을 만날 때는 몇 가지 나름의 기준이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는 프로필에 취향을 아주 구체적으로 적었다. 그리고 “나랑 데이트하고 싶으면, 가장 좋아하는 비틀즈 노래와 그 이유를 알려줘”라는 문장을 넣었다. 덕분에 대화 소재가 부족하지 않을 사람을 미리 가려낼 수 있었다. 첫 만남이 어색하다 해도, 최소한 좋아하는 노래 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떨 수 있으니까. 연인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어느 여름날의 어드벤처

미국, 탁


2023년 여름, 5년 만에 다시 데이팅 앱을 깔았다. 2018년 이후로 연애도 섹스도 하지 않은 긴 시간이었고, 솔직히 그런 욕구도 거의 없었다. 유학생활 스트레스와 항우울제 부작용이 몸과 마음을 꽁꽁 묶어버린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비슷한 처지였던 룸메이트가 갑자기 성욕이 폭발해 데이팅 앱에 뛰어들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심리상담사 선생님도 ‘가벼운 만남이라도 해보라’고 권했었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호기심과 숙제 같은 마음으로  ‘Feeld’라는 앱을 깔았다.


이 앱은 일반 데이팅 앱과 달리 성적 취향에 대해 훨씬 솔직하고 개방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BDSM, 쓰리섬, NTR 같은 이야기도 거리낌 없이 나누는 분위기였다. 나는 특별한 성적 욕구를 채우려는 건 아니었다. 단지 일반 데이팅 앱보다 좌파적이고 개방적인 사람들이 많아 보였고, 무엇보다 외모 수준이 평균 이상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외모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던 어느 일요일 저녁, 무료한 마음에 무작정 스와이핑을 하다가 그와 매칭되었다. 그는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백인 남자였는데, 사진 속 그의 모습이 낯설고 신기했다. ‘사람을 만나보자’는 숙제를 떠올리며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다음 날 아침 하이킹을 하자고 했다.


약속한 날 아침, 운동복을 입고, 선크림을 꼼꼼히 바른 뒤 트레일로 향했다. 프로필에 적힌 6피트라는 키가 다소 과장된 듯해 실망했지만, 손을 잡아도 되냐는 그의 질문에 일단 그러라고 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길을 걸었다. 걷는 동안 나는 왜 ‘어드벤처’를 하고 싶었는지 설명했다. 집에만 있기 아쉬워서,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그런데 그는 갑자기 ‘야외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야외플’ 즉 야외 플레이를 즐긴다며, 누군가에게 들킬 수도 있다는 짜릿함이 좋다고 했다.


나는 당황했지만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다. ‘어드벤처’라는 말의 뜻이 이렇게 다르게 해석될 줄은 몰랐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사실 야외에서 그런 일을 해본 적도 없고, 그런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스마트폰을 모두가 가진 세상에서 누군가의 사진이나 영상이 무단으로 올라가는 현실도 무서웠다. 하지만 동시에 ‘궁금하다’는 마음도 들었다. 정말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조용한 숲 속에서 그런 경험을 한다면 어떨까?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데이팅 앱을 하는 목적을 다시 생각했다. 안 해본 것을 해보는 것. 조금 불편하더라도 컴포트존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그렇게 나 자신에 대해 더 알아가는 것. 모범생이고 성실한 편으로 살아온 내가 심리상담사의 ‘이렇게 해보라’는 말을 너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그래, 해보자”고 말했다. 그는 트레일 옆 숲 속을 헤치며 야외플하기 좋은 장소를 찾아 나섰다. 내가 따라가자, “여기 괜찮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그곳은 건조한 캘리포니아의 마른풀과 나무가 갈색으로 드리워진 곳이었다. 좁은 숲길 옆에는 짚 같은 마른 풀밭이 있었고, 그가 밟은 곳 아래에는 물이 살짝 고여 있었다. 그가 앞장서서 밟은 길을 따라가려던 나는,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며 소리를 질렀다. 예상치 못한 깊은 물웅덩이에 발이 푹 빠져, 운동화는 물론 바지와 속옷까지 젖어버린 것이다. 그는 “그냥 돌아가자”고 했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우리는 말없이 있었다. 축축한 엉덩이를 자동차 시트에 대고 앉아 축축한 발로 액셀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 룸메이트에게 “어플남이랑 야외플 하려다 웅덩이에 빠졌어”라고 말한 뒤 샤워하고 다시 앱을 켰다. 그와는 이미 언매치 상태였다. 나도 별로였는데, 언매치를 먼저 당하다니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도 그 트레일에는 다시 가보지 못하고 있다.


탁의 데이트 팁

데이팅 앱 프로필에 키가 딱 6피트(또는 180cm)라고 써놓은 사람들은 사실 그거보다 작은데 반올림했을 가능성이 있으니 의심을 하자. 차라리 아예 정직하게 5피트 11이라고 쓴 사람과 매치하든지, 아예 크게 6피트 1 또는 그 이상이라고 쓴 사람과 매치하는 것이 낫다.



5살 연하남의 이더리움 플러팅

벨기에 브뤼셀 예린


2024년 10월, 막 브뤼셀에 도착한 참이었다. 집에는 아직 인터넷도 설치되지 않았고, 회사 일에도 적응하지 못한 채 매일이 낯설기만 했다. 그 시기, 퇴근 후 예술의 언덕(Mont des Arts)에 가만히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게 유일한 취미이자 위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방해한 존재가 나타났다. 멀리서부터 시선을 끌던 그는 매우 잘생겼고, 패션 감각도 뛰어났다. 조심스럽게 다가와 “혹시 한국인이냐”고 물었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반가운 듯 “그럴 줄 알았다”며 자신이 한국 드라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열변을 토했다. 그 순간, 마음 한편에 레드 플래그가 살짝 켜졌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니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왔다고 했다. 학생이라길래 나이를 묻자, 19살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히 내 또래일 줄 알았던 나는 당황했지만, 솔직하게 “나 너보다 다섯 살 많아”라고 말하며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그는 자신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문제는 내가 신경 썼다는 점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이 어리다는 점을 숨기고 싶어서인지, 혹은 드라마에서 배운 걸 실전에서 써보고 싶었던 건지, 나를 “예린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내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는 그 순간, 현실감이 사라졌다. 남동생이 있는 K-장녀의 입장에서 내 동생보다 어린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부른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자꾸 함께 바에 가자고 했지만, 나는 정중히 피해보려 “와플이나 먹자”고 말했다. 근처 와플 트럭으로 향했고, 거절의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와플 두 개를 샀다. 왜, 한국에서는 여자가 마음이 없으면 밥을 산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번호를 알려달라기에 거짓으로 번호를 찍어주었는데, 마치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어버려 거짓말이 들통나버렸다. 당황한 나는 그를 차단할 마음으로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되려 하루 종일 메시지 폭탄이 이어졌다. 당황한 나는 그의 심리를 이해하고자 그와 동갑인 19살의 회사 인턴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그는 “거절할 생각이었다면 더치페이를 했어야지”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제야 내 ‘거절 신호’가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미안하지만 좋은 친구로 남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사태는 이상하게 흘러갔다. 그는 갑자기 자신의 이더리움 계좌와 여권 사진을 함께 보내며, “내가 5살 어리고, 너는 돈을 신경 쓰는 것 같지만, 나는 돈이 많고 너를 책임질 수 있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급발진이었다. 아마 내가 와플을 사주었다는 점에서 돈을 신경을 쓴다고 생각한 건지… 나는 무서웠고, “너는 나를 무섭게 만들고 있어. 더 이상 메시지 보내지 마”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나는 늘 여기서 널 기다릴게. 네가 다시 나를 떠올리게 되면 연락해”라고 답하며 마지막까지 황당한 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그를 차단했다.


돌이켜보면 조금은 당황스럽고, 무엇보다 꽤 무서웠던 이방인의 첫 데이트 아닌 데이트 경험이었다. 낯선 도시에서의 설렘은 기대와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올 때가 있다.


예린의 데이트 팁

한국 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면서도, 한국에 대해 지나치게 이상화하거나 환상을 품고 있는 사람을 보면 조심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관심에 분명 기분 좋을 수 있지만, 상대방이 진짜 ‘나’에게 관심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타이틀이나 이미지에 끌린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고마운 일이지만, 나를 하나의 문화적 상징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서로의 진심과 개개인의 진짜 모습을 존중하는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사람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LIFE

나 이방인인데 망한 데이트썰 푼다

에디터 나예린 | 그림 김수림

새로운 일상, 낯선 문화, 익숙지 않은 언어 속에서 외로움은 더 쉽게 스며든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도, 이방인에게 연애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장벽을 마주하게 한다. 언어의 벽, 문화의 차이, 미묘한 뉘앙스의 오해까지. 오늘은 이국의 땅에서 연애에 도전했다가 좌절한 이방인들의 '망한 데이트 썰'을 들어본다. 웃기고, 서글프고, 어쩌면 조금 위로가 될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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