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키야와 규동 한 그릇
1 – 2 스키야의 대표메뉴인 심플한 규동.
500엔 챌린지를 다짐하고 바로 떠오른 곳은 바로 일본 3대 규동 체인점 중 한 곳인 ‘스키야(すき家)’였다. 대표메뉴인 규동은 일본의 서민음식 중 하나로, 저렴하고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기에 특히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6월부터 시작된 도쿄의 무더위를 뚫고 도착한 스키야에는 이미 수많은 직장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주문은 자리에 있는 태블릿을 이용하면 되고 계산도 식사 후 셀프계산대에서 할 수 있다. 주 고객층이 근처 직장인인 만큼 빠른 음식 제공을 위해 나머지 서비스는 대부분 셀프로 운영되고 있었다. 실제로 태블릿으로 규동을 주문하니 1분도 안 돼서 규동이 나왔다. 흡사 날아왔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
1 – 스키야의 메뉴. 참고로 기본 규동 외에는 다 500엔이 넘는다.
스키야에 올 때면 나는 주로 치즈 규동을 주문하는데 치즈 규동은 아쉽게도 690엔에 판매 중이라 이번만큼은 기본 규동을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자세히 보니 기본 규동 이외의 메뉴는 현재 600엔 이상부터 판매 중이었다. 대표 메뉴인 규동만이 500엔 이내를 지키고 있는 것이 마치 서민의 식탁을 지키겠다는 의지처럼 느껴졌다.
1 – 3 스키야의 규동 한 그릇 가격. 이런 가격은 오랜만에 본다.
그릇에는 다른 반찬 일절 없이 밥과 고기뿐이었지만 500엔 안으로 소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즐겁고 입맛을 돌게 했다. 그렇게 한입 떠먹은 오랜만의 규동은 간장베이스가 밥알에 스며들어 단짠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고기의 간은 좀 짠가 싶을 정도로 간이 센 편이었는데 이는 오히려 밥을 더 많이 먹게 되어 적은 고기로도 충분히 한 끼를 즐길 수 있었다. 또한 간간히 올라오는 느끼함을 얇게 썰려 있는 양파가 잡아줘서 끝까지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사실 일본은 요 근래 쌀값 파동이 심해서 규동가격도 올라가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여전히 대표 메뉴인 규동만큼은 500엔이라는 가격을 지키고 있어 안심했다. 아마 이 한 그릇이 오늘날 또 다른 직장인의 한 끼를 구원해주고 있지 않을까.
2.
사이제리야에서 이탈리안 한판
2 - 4 설명 없이
오늘처럼 피로감이 몰려오는 퇴근길에는 ‘요리 좋아’ 인간도 저녁상 파업을 외치고 싶어진다. 특히 이 더운 날 불 앞에서 요리하는 건 더욱 피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퇴근 후 망설임 없이 집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발을 옮겼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밝은 분위기와 가족 친화적인 인테리어가 피곤에 절여진 나를 반겨주었다. 저녁 6시를 조금 넘긴 시간. 마침 저녁식사 시간대라 그런지 가게 안은 이미 가족단위 손님부터 학생과 노인 등 다양한 연령대가 아우러져 식사 중이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훑어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500엔 메뉴가 한두 가지 정도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대부분의 메뉴가 500엔 이하로 판매 중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사이제리야는 마르게리따 피자가 가장 유명한데 마르게리따 피자 포함 모든 피자가 다 500엔 이하였다. 이외에도 도리아, 파스타 등 인기메뉴들이 대부분 세금을 포함해 딱 500엔에 맞춰서 판매 중이었다. 이곳이야말로 500엔 챌린지에 최적인 장소였다.
2 – 5 주문한 함바그 플레이트. 맛있는 조합만 있는 실패 없는 든든한 세트이다.
예상치 못한 다양한 선택지에 행복하게 저녁메뉴를 고민하며 고른 메뉴는 다진 양파가 올라간 함바그 스테이크였다. 주문 후 음식을 기다리면서 옆자리 테이블을 둘러보았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식사 중이었는데 둘이서 메뉴를 5개 정도 주문해서 식사 중이었다. 샐러드부터 디저트까지 빠짐없이 주문한 듯 보였는데 메뉴판을 보면서 주문한 메뉴들과 매치해 보니 다 합해서 3000엔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사이제리야의 가성비에 놀라는 순간이었다. 내가 주문한 함바그는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식탁으로 올라왔다. 함바그 옆에는 잘 익은 반숙 프라이와 스위트콘, 해시브라운이 같이 곁들여져 있었다. 500엔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알찬 구성이었다.
2- 2 ~3 사이제리야의 메뉴판. 500엔 이하의 메뉴가 상당히 많다.
사이제리야도 테이블에서 QR코드로 직접 주문하고 피자와 곁들여 먹을 소스 등도 직접 드링크바에서 가져다 먹는 시스템인데, 이 정도의 가성비라면 서비스와 음식 맛은 크게 중요치 않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불친절하거나 맛없거나 하진 않다.) 식사 내내 나는 이곳이 레스토랑이지만 주민들의 쉼터 역할에 더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저 부담 없는 가격으로 가족들과 식사를 함께할 수 있고, 드링크바만을 이용하며 여유롭게 신문을 읽던 옆자리 어르신을 보며 이곳에 왜 늘 사람이 붐비는지, 오래도록 사랑받는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남을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오늘의 저녁은 어쩐지 배보다 마음이 든든한 날이었다.
2 – 6 사이제리야 영수증. 딱 500엔이다.
3.
출근길과 함께한 갓 구운 콧페빵
3 – 잘못 주문한 새우아보카도 콧페빵. 하지만 맛은 훌륭했다.
나는 콧페빵이라는 존재를 일본에 오고 서야 처음 알았다. 이미 수없이 접해본 적 있는 빵이지만 그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한 건 일본에 온 이후였다. 콧페빵은 사실 흔히 볼 수 있는 핫도그 번인데, 알고 보니 과거 급식으로 이 콧페빵이 제공되었기에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 빵이 곧 추억의 빵이자 오랫동안 사랑받는 국민 빵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심심찮게 콧페빵 전문점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오늘의 챌린지는 이 콧페빵 전문점의 샌드위치. 최근 회사 업무가 바빠 점심에는 밥 먹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오늘은 점심을 스킵하고 아침을 먹을 계획이었다. 마침 출근길 역 앞에 위치한 콧페빵집이 있어 샌드위치를 포장해 가기로 했다. 나처럼 출근하는 직장인이 메인 타깃인지 가게는 이른 아침부터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떤 샌드위치를 먹을까 고민하며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 메뉴가 다양한 데다 모두 500엔을 넘지 않아서 챌린지에도 적합했다. 나는 좀 더 고민하다 메뉴를 정하고 싶었지만 뒤에 계속해서 늘어지는 직장인들의 행렬을 보고 초조해진 맘에 그만 눈앞에 보이는 아무 메뉴나 주문했다. 후보에도 없던 메뉴를 골라서 좀 후회가 됐지만, 이내 바쁘고 배고픈 직장인들의 출근시간을 방해하지 않았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그렇게 내가 얼떨결에 고른 메뉴는 새우아보카도 샌드위치였다.
3 – 3 콧페빵의 메뉴판. 종류가 상당히 많고 전 종류 저렴하게 판매 중이다.
회사 앞 공원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려고 포장지를 연 순간 내 입에서 작은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콧페빵 사이에 속재료가 꽉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터져 나올듯한 에그마요의 비주얼에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우연히 고른 메뉴가 대성공이었다.
빵을 한입 먼저 베어무니 부드럽게 입안을 스쳐갔다. 입안에서 금방 녹을 정도로 빵은 부드러웠다. 에그마요와 아보카도 둘 다 부드러웠기에 샌드위치는 금방 내 입안으로 녹아 사라졌다. 그렇게 순식간에 아침식사가 끝났다.
3 -2 콧페빵의 영수증. 요즘 물가를 생각하면 훌륭한 가격이다.
편의점의 식빵 샌드위치가 300-400엔 하는 걸 생각하면 이곳의 샌드위치가 맛으로 보나 양으로 보나 더 가성비가 좋다고 느껴졌다. 새로운 맛집을 발견한 것 같아서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4.
동네의 숨어있던 보석 같은 가게, 카도야
4 – 카도야의 오래된 간판.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4 – 5 소박한 매력이 있는 카도야의 야키소바. 곱빼기는 100엔 추가이다.
어느 날 문득, 500엔 챌린지의 진정한 취지는 프랜차이즈나 포장음식이 아닌, 가성비가 좋고 맛있는 ‘숨어있는’ 가게를 찾아내는 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늦게나마 집 근처에 500엔 이하로 식사가 가능한 곳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하지만 역시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블로그 글을 보고 500엔 메뉴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서 막상 가게를 찾아가면 1년 전을 기점으로 가격이 오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좋은 가성비로 사랑받던 기존의 가게들조차 물가상승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가격을 올린 듯 보였다.
그렇게 여러 차례 절망하며 ‘역시 프랜차이즈만이 답인가…’하고 반쯤 포기했을 때쯤, 우연히 동네를 산책 중이던 내 눈앞에 카도야라고 적힌 낡은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실 나는 그동안 이 가게가 이미 망한 가게인 줄 알고 있었다. 낡은 간판을 달고 멀쩡히 영업 중이었다니, 머쓱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 밖에 붙어있는 메뉴의 가격표를 보고 한번 더 놀랐다. 이곳이야말로 내가 계속 찾고 헤매던 500엔 메뉴를 파는 곳이지 않은가!
4 – 2 카도야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한 메뉴판 사진. 손글씨로 하나하나 작성한 것이 또 하나의 포인트.
4 – 4 어릴 적 학교 앞 분식집이 떠오르는 정감 가는 카도야의 인테리어.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들어간 가게의 분위기는 딱 한 줄로 설명할 수 있었다. 어릴 적 학교 앞 분식집. 손으로 쓰인 가게의 메뉴판과 선풍기만이 돌아가는 가게 안은 어릴 적 향수를 자극했다. 여전히 라멘과 우동을 500엔에 파는 곳이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고심 끝에 단돈 400엔짜리 야키소바를 주문했다. 주문과 동시에 부엌에서는 달그락하며 철판에서 재료가 볶아지는 소리가 났다. 금방 완성된 소박하고 투박한 야키소바는 생김새와 닮은 맛이 났다. 간장소스의 짠맛, 양배추의 단맛. 재료 그대로의 소박한 맛과 함께 그 외의 맛은 느껴지지 않는 투박함. 오히려 이 숨김없는 맛이 맘에 들었다. 양도 혼자 먹기 딱 적당했다.
4 -3 메뉴를 주문하면 계산 트레이를 가져다준다.
100엔의 거스름돈을 챙겨서 나온 나는 손안에 놓인 동전을 꼭 쥐며 앞으로도 가게가 오래오래 이 자리를 지켜주길 기도했다.
5.
심플함의 끝, 마루가멘의 자루우동
5 – 2 마루가멘의 심플한 자루우동
많은 사람들이 우동 을 겨울음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에게 우동은 여름 별미 중 하나이다. 특히 차가운 츠유 소스에 탱글한 우동 면발을 담가서 먹는 자루우동은 매년 여름마다 꼭 먹는다. 그렇게 올해 여름도 자루우동을 먹기 위해 일본의 대표 우동 프랜차이즈 중 하나인 마루가멘 우동을 방문했다.
5 – 마루가멘의 메뉴 사진. 토핑 없는 기본 우동은 굉장히 저렴하다.
원래라면 자루우동에 여러 가지 튀김을 추가해서 먹었겠지만, 이번만큼은 500엔 챌린지를 위해 우동만 주문해 보았다. 자루우동 보통사이즈는 420엔.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튀김 하나가 100엔이 넘기에 토핑을 추가할 수는 없었다. 마루가멘은 주문하면 배식을 받듯 우동을 건네받고 원하는 튀김을 셀프로 담는 시스템인데, 눈앞에 하얀 면과 검은 츠유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걸 보니 굉장히 낯설었다. 막상 먹으려니 이걸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먹을 수 있을지 걱정마저 되었다. 맛없고 심심한 건 참을 수 없는 자칭 ‘쩝쩝 박사’인 내겐 조금 불안한 첫 도전이었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면 한가닥을 츠유에 푹 담가 입안에 넣는 순간, 탱글한 우동면이 입에서 요동쳤다. 쫄깃하고 탱글한 식감의 우동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맛있었고 충분히 만족스러운 한 끼 식사가 되어주었다. 오히려 그동안 추가해서 먹었던 갖가지 토핑들이 우동 본연의 맛을 즐기는 데는 방해요소가 되었다는 사실마저 깨달았다. 결국 면 요리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면이며 가끔은 재료를 덜어내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는 교훈까지 덤으로 얻었다. 한동안 또 내 안에서 자루우동 붐이 시작될 것 같다.
5 -3 마루가멘의 영수증. 마루가멘에서 이 정도로 저렴하게 먹어본 건 처음이다.
이번 500엔 챌린지를 사실 여럿차례 쓴맛을 맛보았다. 전에 500엔에 먹은 적 있던 가게에 챌린지를 위해 방문했다가 그새 가격이 올라서 챌린지에 실패하거나 세금을 포함하면 애매하게 500엔이 넘는 경우 등 다양한 고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과거와 다르게 요즘은 500엔 동전 하나로 외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500엔에 판매 중인 가게도 여럿발견해서 신기하고 기쁜, 의미 깊은 챌린지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는 것도 정말 좋지만 가끔씩 이렇게 절제하며 소박한 식사를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에디터 김세빈
먹고 걷고 쓰며 하루를 그려가는, 건강한 하루와 균형 잡힌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 작은 일상도 이야기로 남기는 걸 좋아합니다
LIFE
도쿄 직장인의 500엔 외식 챌린지
글/사진 김세빈
코로나 이후 세계를 강타한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은 일본도 피할 수 없었다. 절약을 위해 도시락 생활을 이어갔지만 반복되는 메뉴에 곧 질려버리고… 돈은 없지만 맛있는 걸 먹고 싶어! 그렇게 시작된 도쿄 직장인의 500엔 외식 챌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