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때 우리 특이하신 국어쌤은 자주 말씀하시곤 했다.
“여행에는 두 종류가 있지. 혼자 가는 여행, 그리고 여럿이 함께 가는 여행.”
거기에 대고 나는 “쌤, 근데 안 가는 방법도 있죠!” 라고 까불다가 교실 뒤에서 손들고 벌을 선 적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여행은 꼭 그 두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함께 떠나려다가 혼자가 되는 여행도 있으니까.
시작은 비장했지만, 그렇게 비장한 이야기는 아니다. 슬로바키아에 살고 있는 친구와 함께 둘이 사는 곳 중심에 있는 폴란드의 크라쿠프로 여행을 함께 가려다가, 내가 이미 기차에 앉아있을 때 독감이 너무 심해 도저히 못가겠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혼자 크라쿠프에서 3일을 보내게 되어버린 그런 이야기다.
전화기 너머의 친구는 너무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그 친구를 안 본지 1년이 다 되어가기에 나도 무척 고대했던 여행이라 속상하고 아쉬움도 컸다.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 내가 가을에 슬로바키아에 방문해보겠다고 약속하며 친구를 진정시킨 후, 이왕 이렇게 된거 혼자라도 최대한 잘 지내다 와야겠다 생각했다.
도착하자마자 만난 크라쿠프의 첫인상은 ‘참 푸르다!’였다. 나무 가득한 공원’띠’가 도심을 빙 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년 전부터 성곽을 둘러싸던 녹지대가 그 원형이라고 하는데, 크라쿠프 시가 그걸 잘 살려내 공원으로 조성해놓아 덕분이 시민들의 더위 쉼터가 되었다.
공원을 지나 에어비앤비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원래 친구랑 가기로 했던 식당에 가서 크라쿠프에서의 첫 끼를 먹었다. 그런데 비싸기만 하고 맛은 없어서 조금 실망했다. 반주로 한잔 했던 와인 탓에 살짝 알딸딸한 기분으로 도시 이곳저곳을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사진1: 운치 있는 크라쿠프 건물들
하지만 보이는 건 많아도 아는 게 없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함께하는 여행은 도시를 알아가는 것도 있지만 함께 추억을 쌓으려는 목적이 크니 도시의 존재는 일종의 ‘바탕’ 역할만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혼자 오니 이 도시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던 것이다. 첫날에는 그저 걷고, 이런 저런 가게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다가 숙소로 돌아오니 어쩐지 왠지 이 도시와 겨우 온라인 데이팅만 하고 온 기분이었다. 각종 프로필을 스와이프하듯 도시의 장소들을 스와이프하고 지나간 느낌. 자기 전 침대에 누워서 찜찜한 마음을 해결할 방도를 고민했다. 그저 먹고 놀다 가는 방문객으로 지내고 오고 싶지 않았기에 이 도시를 한 번 제대로 사귀어봐야겠다고. 그래서 인터넷에서 무료 워킹투어를 찾아내 다음날로 예약을 해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사진2: 혼자 즐긴 브런치
다음날 오전에 혼자 브런치를 즐기고 그 유명하다는 허니케이크도 먹고 난 오후 한시경, 워킹투어에 참여하러 갔다. 가이드는 머리가 단발 곱슬머리인 폴란드 사람이었고, 옷차림이며 모자며 왠지 ‘헬렐레’한 인상을 주어 이 투어 정말 괜찮을까? 싶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워킹투어를 신청한 건 이번 여행에서 제일 잘 한 선택이었다. 우선 가이드가 설명을 정말 재미있고 열정적으로 했으며, 크라쿠프라는 도시에 애정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을 만큼 그 역사와 변화과정을 세세하게 소개해주었다. 건물 하나 하나, 현재의 무엇이 어디에, 과거의 어떤 이유로 이곳에 서있는지- 크라쿠프의 겹겹의 역사를 듣고 나니 도시가 드디어 내 앞에서 살아나서 말을 건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혼자 온 여행이지만, 과거를 살아낸 이곳 사람들의 숨결 덕에 온전히 혼자는 아닌 듯한 느낌이었다.
사진3: 과거에 예대생들이 성벽 앞에서 그림을 팔았던 전통이 지금까지도 유사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나는 투어같은 걸 했을 때 집중을 못하고 쉽게 정신이 딴 데로 쏠리는 사람이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 온전히 투어를 즐겼다는 건 우리의 가이드 Maciek이 정말 뛰어난 가이드라는 뜻이다.
워킹투어 추천: https://freewalkingtour.com/krakow/
사진 4: 진짜 맛있었던 피에로기 맛집에서
피에로기 맛집 추천
Mirror Bistro: https://g.co/kgs/Az7pt4f
내 마음을 정말 사로잡았던 건, 세인트메리 성당의 종탑에서 매 정각마다 울려퍼지는 트럼펫 연주였다. 아주 옛날부터 지켜온 의례라는데, 매 시간 다른 방향의 창문이 열리면서 연주자가 트럼펫을 창밖으로 내밀어 연주를 하고는 손을 흔들어주고 마무리하는 의식이다. 이제는 시계라는 것도 존재하고, 불이나 적의 침입을 알리는 다른 방법들이 마련되어있어 무의미해져버렸다고 생각해도 무관한 의례를 고집스레 지켜낸다는 게 내게는 어쩐지 위안 이 되었다.
사진 5: 봄이라 사방에 잔뜩 핀 수선화
투어의 종착지인 Wawel성에 오니, 해가 슬슬 지고 있었다. 가족단위로 온 여행객들이 날씨와 경치를 즐기고 있는데, 그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환희로 가득 찼다. 부모님이랑 여행을 다녔던 어린시절이 떠올라서였을까.
한 여자아이가 갑자기 나를 보며 활짝 웃고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선물을 준 적이 없는데 마치 선물을 받은 것마냥 너무나 밝은 표정으로 웃어주길래 나도 절로 웃음이 났다. 이런 순간은 귀하다. 불과 몇초 사이에 두 눈이 만나 하나의 작은 세계를 이루었다가 비눗방울처럼 터진다. 두 사람 외에는 그 누구도 목격하지 못한 작은 마법이다. 이런 순간들이 혼자 온 여행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사진6: Wawel 성 주변
크라쿠프를 방문한 기간은 마침 부활절기간이었다. 폴란드 사람들은 대부분 종교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다녀서 부활절은 이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가이드가 예수의 부활을 알리는 종소리 의례가 밤 10시에 있을 거라고 일러주어 나는 저녁을 먹고 다시 Wawel성 언덕을 올랐다. 사람들이 전부 곱게 차려입고 부활을 축하하기 위해 성당에 모여들었다. 유난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또 그 곱게 차려입은 사람들을 보며 행복했다. 어떤 종교인지를 떠나, 우리 자신의 심장보다 더 큰 심장을 경외하는 마음, 그 마음으로 나아오는 자리가 경이롭게 느껴져서 살짝 울고싶기도 했다.
사진7: 예수의 부활을 축하하러 밤에 성당을 찾은 사람들
세인트메리 성당에서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돈과 권력이 당시에는 전부 교회에 모였던 탓도 있겠지만, 성당의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까지도 오만 정성을 들여 짓고 칠하고 꾸민 흔적들을 보니, 효율, 깔끔함과 비어있는 것, 그래서 질척거리지 않는 것이 미의 기준이 된 지금과 대비되었다. 인간보다 위에 있는 존재가 자본 말고도 존재했다는 사실이 안심이 되었달까. 일요일에 모든 독일 슈퍼마켓이 문을 닫는 사실을 은근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절대 지지않을 것 같은 이윤과 효율이라는 가치 앞에 그래도 이곳에서는 다른 하나의 가치가 그 앞에서 버티고 서있다는 사실이 나지막한 위로다.
사진8: 정성들여 꾸며진 세인트메리성당
사진9: 투어 시작을 기다리며 먹은 허니케이크
진짜 맛있었던 허니케이크 맛집 Finca Cafe
전날의 워킹투어가 좋았기 때문에 다음날에는 올드타운 말고도 크라쿠프의 유대교의 역사를 배우는 투어를 신청했다. 이 투어 역시 Maciek이 진행하는 투어였고, 이틀 연속으로 얼굴을 보니 사뭇 반가웠다. 과거에 나치가 이곳에 쳐들어왔을 때 많은 폴란드인이 가족의 안위를 감수하고서라도 유대인을 자신의 집에 숨겨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몰려살던 게토에는 비유대인 약사가 동네 유일의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는 독점권을 이용하려 떼돈을 벌 수 있었음에도 가격을 꿋꿋이 올리지 않고 원래 가격대로 약을 판매했다고 한다. 정상적인 인간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곳, 그리고 그저 일상을 누리게 했던 이 약국은 당시 이곳사람들에게 소중한 사랑방이 되었다고 한다. 가이드의 표현이 멋졌다. “그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큰 행동을 취했습니다.” 유대인 학살을 추모하는 광장의 의자동상들은 그래서 대부분 그 약국 방향을 가리킨다.
사진10: 나치시대, 유대인 게토에서 시민들의 일상을 지킨 약국
또 한 가지 인상깊었던 것은, 나치시대 때 유대인 게토와 도시의 다른 지역의 경계에 설치한 아치모양의 벽이다. 유대교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은 모세의 십계명의 모양을 딴 아치형이 많은데, 그 모양이 마치 묘지의 비석과도 같아 모욕을 위해 의도된 디자인임을 알 수 있다. “이 구역을 떠나면 너희는 늬들 무덤 속으로 걸어가는 거다.” 그 아치모양이 우리나라 일본 식민지 시절, 창경국이 동물원으로 이용되었던 모욕과 겹쳐 보였다.
사진 11: 비석처럼 생긴 아치모양의 벽
투어가 끝나고 나니 그새 정들었는지 Maciek과 헤어지기가 아쉬웠다. 헤벌레한 첫인상과 다르게, 알고 보니 너무 멋진 사람이었다. 무신론자면서도 신학을 공부하러 이스라엘로 유학가 히브리어를 배워 온 사람이었고, 반지의 제왕 열혈 팬으로서 반지에 적힌 문구를 자신의 팔에 문신으로 세기고 영화 촬영장소를 전부 보기 위해 뉴질랜드 일주를 했을 정도로 무언가에 열정적일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싸움이 심한 가이드 세계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다른 가이드의 목소리를 덮지 않게 조심하고, 지나가는 행인들이 방해받지 않도록 우리를 늘 길가에 멈춰세웠다. 다른 그룹이 오면 그들의 차례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었다. 동시에 우리가 태양빛 아래에 서서 고생하진 않는지 세심하게 살펴주었다. 그러면서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니. 그를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마음에 투어가 끝나고 헤어질 때는 슬프기까지 했다.
사진 12: 저녁으로 먹은 폴란드식 바게트피자 Zapiekanki
사진13: 입에서 살살 녹는 폴란드 간식 추천!
배를린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살짝 꿈을 꾸다 깬듯했다. 혼자 여행하게 될 줄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내가 크라쿠프를 이리 짧은 시간 안에 아주 아주 많이 좋아하게 될 줄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건축양식도, 도시구조도, 사람들도 전부 사랑스러웠기에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크라쿠프에 꼭 가라고, 그리고 가서 투어도 둘 다 하라고 말하고 다니는 중이다. 가장 감사했던 것은 역시 크라쿠프 역사의 유산을 통해 우리 세대가 미래에 남길 역사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상처든 상패든 다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니, 어떤 것을 지키고 어떤 것을 경계하며 살아야 할지 막연하게나마 성찰하고 싶어졌다.
에디터 김보경
베를린에서 도시지리학을 공부하고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다정한 마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TRAVEL
얼떨결에 혼자 떠난!
에디터 김보경
여행이 늘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함께 떠날 줄 알았던 여행이 예기치 않게 혼자만의 여행이 되기도 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도착한 폴란드 남부 도시 크라쿠프는 예상보다 훨씬 따뜻하고 깊은 얼굴을 가진 도시였다. 다만, 사람을 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시와 가까워지는 데도 마음이 필요하다는 걸 실감한 곳이기도 하다. 이글은 얼떨결에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크라쿠프와 어떻게 만나고, 사귀고, 아주 많이 좋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