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어로 ‘입덧’이 뭐야?
네덜란드는 유럽 내에서도 영어를 잘하기로 소문난 나라지만, 엄연히 네덜란드어가 존재한다. 특히나 이민자가 많은 암스테르담을 벗어나면 영어 반, 네덜란드어 반이 일상이다. 네덜란드어를 꾸준히 배우고 있지만, 당장 임신과 육아 관련 단어에 대한 지식은 부재했다. 심지어 영어로도 헷갈리는 일이 많았다. 예를 들어 한국 엄마들 사이에서 필수 아이템으로 여겨지는 가제 손수건이 ‘gauze’에서 파 생된 말이라는 사실을 임신 이후에 검색을 해보고서야 알게 됐다. 네덜란드에서는 이를 보통 hydrofiele doeken이라고 부르는데, 이걸 영어로 번역해서 검색을 해보니 뜬금없는 이태리 때타올이 나왔다. 그렇게 나는 이태리 때타올과 아기 손수건에 같은 레이온 섬유 소재가 쓰인다는 걸 알게 됐다.
이처럼 알고 있는 단어도 영어로 먼저 찾아본 뒤, 네덜란드어로 번역해야 하는 삼중 번역의 어려움이 임신 초기를 통과하던 나를 매우 힘들게 했다. 첫 진료를 예약하며 몸에서 느껴지는 증상을 설명해야 할 때도 곤란함의 연속이었다. 단어를 고르다 헷갈린 나머지 네덜란드어로 입덧을 뜻하는 ‘mislukt’를 영어로 ‘miscarriage(유산)’라고 말해 버린 것이다. 전화 건너 당황해하는 병원 직원에게 오히려 내가 나의 부족한 네덜란드어 실력을 사과해야 했다.
미드와이프와 함께 하기
네덜란드는 웬만큼 아프지 않고서야 전문의를 볼 수 없는 의료시스템으로 유명한데, 이는 임신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미드와이프, 즉 산파와 임신 초기부터 출산 이후까지 함께 하게 된다. 한국에선 테스트기 두 줄을 보고 첫 산부인과를 방문하면 소변검사를 통해 정말 임신이 맞는지 재확인을 해준다고 들었다. 내가 처음 GP(하우스 닥터)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고 방문했을 때, 나도 무언가 임신이 정말 맞다는 확신을 그에게서 얻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음! 축하해! 근데 나는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미드와이프를 얼른 찾아봐!”라며 솔직하게 본인의 비전문성을 털어놓았다. 결국 홀로 후기를 뒤져가며 미드와이프를 예약했다. 네덜란드는 초음파 검사마저 드문 편이다. 평균적으로 임신 10주 차가 첫 초음파고, 보험이 적용되는 초음파는 임신 기간을 통틀어서 총 10회도 되지 않는다. 보통 테스트기로 두 줄을 확인하는 시기는 4주 차 정도가 되는데, 한 달을 넘는 기간 동안 내 몸에 아기가 있긴 한 건지 불안에 떨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임신 7주 초기 초음파를 봐주고,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미드와이프를 찾아내 예약에 성공했다. 나의 인생 첫 초음파는 동그란 경단 같은 점 하나였다. 침대에 누워 스크린을 바라보는 나에게 오늘 처음 만난 미드와이프가 웃으며 말했다. “축하해! 쌍둥이는 아니네!” 정말 네덜란드인 다운 축하 멘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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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써야 할 문화만 세 가지
본격적인 카오스는 주변에 임신 사실을 조심스럽게 알리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우리 부부는 엄연히 따지자면 제3 국에 거주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남편이 중국계 네덜란드인이기 때문에 한국, 중국, 네덜란드, 이렇게 세 문화가 골고루 섞여 있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아기집을 확인한 이후, 당시 잠깐 중국에 체류 중이셨던 시부모님과 전화하던 때였다. 예전에 아버님이 만들어주셨던 만둣국이 먹고 싶어 레시피를 여쭤보자, 다정한 성격인 어머님이 평소와 다른 단호한 말투로 절대 안 된다며 반대하셨다. ‘만두가 몸에 해롭지는 않을 텐데?’ 싶어 여쭤보자, 어머님이 진지한 말투로 대답하셨다. “임신할 때 만두를 빚으면 아기 귀가 만두처럼 말려서 나온다!” 헉. 정말 난생처음 들어보는 미신이었다. 한국과 중국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미신이 많았는데, 특히 성별에 관한 미신이 많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에선 과일처럼 신 음식이 당기면 여아라는 미신이 널리 퍼져있는데, 반대로 중국에선 신 음식이 끌리면 남아, 매운 음식이 끌리면 여아라고 한다. 과학과는 전혀 관련 없는 미신이란 역시 이런 걸까.
굳이 미신뿐만이 아니었다. 한국, 중국, 네덜란드가 권장하는 정보 또한 다르다. 중국은 너무 매운 음식이나 너무 찬 음식은 무조건 피하라고 한다. 네덜란드는 해산물에 관해선 굉장히 보수적이다. 다른 나라에선 오히려 오메가 3 섭취를 위해 생선을 먹으라고 난리인데, 네덜란드는 생선, 새우에 각박하다. 한국은 최근 들어 음식의 종류에 대해선 많이 유해진 것 같으나, 산모 사이에서 요리에 사용하는 소량의 알코올조차 조심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반면에 세 문화를 걸쳐있는 나는 의외로 아무런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 정말 상식적으로 임신 중 섭취하면 안 되는 술, 담배, 날음식을 제외하면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길 때마다 그냥 먹으면서 살고 있다. 내 신조는 이렇다. 참치김치찌개가 먹고 싶다고 치자. 참치는 소량이지만 수은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임신 중 아예 먹지 말라거나(네덜란드), 적은 섭취량을 권장하는 경우(한국, 영국 등)가 대부분이다. 나는 이런 경우 그냥 눈 딱 감고 한번 먹어버린다. 내가 참치 1톤을 매일 먹을 건 아니지 않은가? 일일이 스트레스를 받을 바엔 먹는 것이 내 성향에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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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가 낳는 카오스를 기다리며
사실 제일 먼저 걱정되는 것은 아이의 정체성이다. 이방인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 보는 그 정체성 말이다. 우리 부부만 해도 여전히 정체성을 찾는 중인데, 우리 아이를 어떻게 이끌어줘야 할지가 벌써 고민이다. 언어도 문제다. 다중언어 환경에 노출된 경우, OPOL(One Parent, One Language) 전략이라고 해서 각 부모가 한 언어만을 사용하는 걸 권장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쓰는 언어가 두 개가 아니라, 한국어, 네덜란드어, 영어, 중국어, 거기에다 남편 가족이 사용하는 중국어 사투리까지 다섯 개나 된다.
인종차별은 또 어떠한가. 남편도 네덜란드에서 자라며 마주한 차별과 폭력을 덤덤하게 이야기하기까지 오래 걸렸다고 한다. 내 뱃속의 작은 생명이 맞닥뜨릴 모든 것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우린 짧지만 단단한 결론에 이르렀다. 아이가 헤쳐나가게 두자. 우리는 보호자로서 곁에 머무르며 경험을 나누고, 아이를 차별에서 지켜주고, 정체성이 조금 흔들리더라도 굳건한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자. 우리 부모님이 우리에게 그랬듯이.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우리의 일상에 더 큰 카오스를 가져다줄 나의 아이가 경험할 그 아이만의 카오스는 어떤 풍경일지 조금 기대가 되기도 한다. 부디 이 카오스를 아이가 즐겨줬으면 좋겠다. 엄마가 살아보니까 삶이 너무 잔잔해도 재미없더라!
에디터 사이준 코
네덜란드의 북부 소도시에서 지속가능경영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연구하는 박사생. 현재 박사 계약 만료를 앞두고 만삭의 몸으로 구직하는 중이다. 자투리 시간에 글을 쓰고, 요리를 하고, 온갖 잡생각을 하며 지낸다.
LIFE
혼란하고 어지러운 네덜란드 임신 생활
에디터 사이준 코 그림 김수림
결혼 4년 차, 그에 더해 만난 지 어언 10년 차를 맞이하는 올해. 유독 거칠었던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내가 빌었던 건 부디 올해만큼은 평탄한 한 해가 되어달라는 소박한 소원이었다. ‘평탄한’이라는 형용사가 꽤 모호했던 탓일까? 우리 부부에게 정초부터 다가온 첫 소식은 평탄함과 거리가 매우 먼 임신 테스트기 두 줄이었다. 그렇게 네덜란드에서 나의 일상은 또 한 번 카오스에 휘말렸다.
